토함산에 올랐어라 해를 안고 앉았어라 가슴속에 품었어라 ♪
세월도 아픔도 품어 버렸어라~ ♬
송창식의 '토함산' 노랫말처럼 설 연휴 마지막날 북한산에 올랐다.
혼자 뚜벅뚜벅 걸어 오르면서 상념이 스쳐갔다.
바다보다 산을 좋아했던 젊은 시절...
한여름 피서라고 다들 바다로 떠날 때 난 친구들과 산 속에서 야영한 기억.
늦은 저녁에 아침 반찬이 없어 산아래 가게로 사러가야했다.
제비뽑기로 정했는데 내가 딱 걸려서 깜깜 산중이라 랜턴에 의지한채
혼자 내려가다 도중에 랜턴 불이 꺼져서 꼼짝 못하고 몸이 얼어붙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산새, 짐승 소리에 공포감에 어찌어찌 다녀오고...
늦은 밤 비가 억수로 쏟아져 텐트가 물난리, 자다깨다 일어나니
인근 개울물에 담가놓은 음료, 수박, 그릇들이 모두 떠내려가 망연자실.
그 때 그 친구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사는지...
지금의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노할머니와 노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그녀는
노할머니 모시고 내 차로 북한산 약수터에 함께 다니면서 약수물을 받아오던 기억.
산 정상에 있던 그 약수터가 지금도 있는지 없어졌는지 궁금하지만
지금은 차량이 북한산 입구에서 막혀 갈 수 없게 됐다.
처음엔 걸어서 등산하며 가봐야지 했으나 이 핑계, 저 변명으로 못가본지 수십년.
노할머니, 노할아버지 모두 돌아가시고 나니 결국은 가볼 일 없어진 약수터.
오랜만에 북한산을 오르면서 다시 약수터가 생각났지만 정상에 가지 못한 탓에
약수터는 당시 그대로 기억으로만 남게 됐다.
북한산에 대한 기억 하나 더.
한국일보 기자 시절 부서 여름 야유회가 북한산으로 정해졌다.
당시 은평구 역촌동에 신혼살림을 차린 터라 가까운 곳으로 가게 돼서 좋았다.
국장, 부장 등 데스크와 차장 등 선배, 동료들과 함께 북한산 식당에서 닭백숙으로
식사(지금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당시 기자문화는 식사 반주로 폭탄주를 먹을 정도)하고
야외이기에 시끌벅적하게 가무를 즐겼다.
식당 인근 개울을 막아 만들어진 웅덩이에서 물놀이도 했는데 분위기에 취한 한 동료가
서있는 나를 갑자기 밀어서 웅덩이에 빠지게 됐다. 그런데 웅덩이가 생각보다 깊어서
한참 가라앉게 돼 물을 많이 먹고 허둥지둥 나왔던 기억.
그렇게 많은 기억들, 살며 살아가며 송창식의 '토함산' 가사처럼 세월도 기억도 가슴 속에
품었던 것들이 북한산을 오르며 다시금 떠올랐다.
이번 북한산 홀로 등반 역시 북한산에 대한 또 다른 기억으로 남는다.
그래서 언젠가 다시 북한산을 오르는 날에는 기억 속의 기억과 함께 이번의 새로운 기억을
더하면서 산을 오르는 건강함에 대해 감사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등반하는 것뿐이랴. 산을 오를 수 있는 다리와 기억할 수 있는 머리, 편안히
숨 쉴 수 있는 모든 건강함이 있음에 생명을 주관하는 신께 감사와 영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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