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의 세상

기자로서 글을 쓴다는 것은…

최고야님 2023. 5. 8. 14:09

오래 전부터 쓰고 싶은 이야기였는데 쓰지 못했다. 아니, 같은 기자로서 이런 글을 써도 되나하는 고민에 쓰는 결정을 못한 것이 맞겠다. 쓰고 있는 지금도 그 생각은 같다. 그럼에도 쓸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결국 쓴다.

21세기 디지털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인터넷 문화가 급속 발전하고 있다. 가히 전방위적이다. 

이런 영향으로 미디어 분야도 놀라운 변화를 맞게 됐다. 신문·방송 외에 '인터넷 언론'이 자리잡으면서 관련 매체 수가 대거 증가하고 있다. 기자 수 역시 기하급수적이다. 

당시에는 신문·방송 기자가 되려면 준비를 철저히 해야 했다. 입사시험이 사법·행정고시 등 국가고시에 준할 정도로 어려워서 언론고시로 불릴 정도였다. 재수는 필수처럼 됐고 삼수 이상도 부끄러운 일은 아니었다.

필자도 여러 매체 고배 후 한국일보 49기로 중앙일간지라는 무대에 본격 진입했다. 지금은 이른바 '라때는'으로 들리겠지만 당시 수습기자(한국일보는 견습기자)는 의무적으로 '사쓰마와리'라는 수습교육을 거쳐야 했다. 

'사쓰마와리(察廻)'는 경찰기자를 지칭하는 일본 말로서, 한자 그대로 경찰서를 순회한다는 뜻이다. 즉 기자가 각 경찰서를 중심으로 해당 지역을 돌며 취재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새벽 4~5시에 관할 경찰서를 방문해 사건사고를 확인하고 시경캡(모자가 아니라 서울특별시경찰청을 출입하는 최고 선임기자·서울시경(市警)+캡틴(Captain)을 합쳐 표현)에게 기사로 보고하는 방식이다. 마와리는 수습을 포함해 보통 2~3진 기자가 도는데 시경캡은 경력이 있는 1진 기자들 중에서도 최선임이 맡아서 권한이 막강했다. 

시경캡은 사실상 기자훈련소장이면서 사건 데스크로 기자와 기사 관리를 담당한다. 그렇기에 뉴스 결정에 많은 권한이 있지만 하는 일은 일인다역으로 고되다. 

사쓰마와리를 거치고 나면 정치부 국회출입·경제부 기획원 출입 등 자기 취재 영역인 '나와바리'를 맡게 된다. 당시는 언론 시스템이 일본 문화를 거의 답습했기에 기본 용어를 대부분 일본어를 사용했다.

여기서 언급하진  않아도 사쓰마와리 시절의 에피소드는 셀 수없을 정도로 많다. 시간을 두고 되짚어 보기로 하자.

지금이야 노트북(Laptop)으로 언제 어디서든 기사를 송고할 수 있지만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기자수첩으로 취재하고 원고지에 기사를 작성해야 했다. 기사가 신문으로 나오려면 기자-편집-문선-윤전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기사를 쓴 원고지를 편집부로 보내면 편집은 원고지에 기사와 제목 등을 적어 문선부(文選部-납으로 된 활자를 기사에 맞춰 지면처럼 배치해 주는 곳)로 보내고 문선은 이를 동판(銅板-배치된 지면을 눌러찍은 구리 판)으로 제작 후 윤전부로 보낸다. 윤전은 이 판을 대형 윤전기에 걸어 돌리면 신문이 인쇄돼 나온다.

데드라인이라고 기자들이 목숨처럼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사 마감시간도 이같은 신문 시스템의 영향이 크다. 내 기사 하나로 인해 마감이 늦으면 신문 발행 자체가 중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감 직전 대형사고 발생 등 긴박한 상황이 생기면 기자는 윤전기를 세울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기도 했다. 그만큼 보도의 신속성이 우선시 됐다.

지금은 이와 비교하면 취재와 인쇄 등 신문 제작 시스템이 실로 놀라운 성장을 이뤘다. 납 활자 대신 랩탑 노트북, 전면 올컬러가 가능한 초고속 윤전기에 인터넷 전송 시스템 등 시간과 장소에 구애(拘礙) 없이 취재·제작이 가능한 시대가 됐다.

반면에 기자들의 수가 급격히 증가해 이로 인한 반작용도 있다. 인터넷 매체의 특성상 온라인으로 업무를 봄으로써 현장감이 약해진 것이다. 

단 한 줄이라도 현장에 가지 않으면 쓸 수 없었던 '라때'와 반대로 지금은 출입처에서 '보도자료'라고 기사처럼 들어 보내준다. 기자는 이를 등록해 기사화하기만 하면 된다. 심할 경우 오자까지 그대로 게재하는 경우까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데스크가 기자에게 현장취재로 기사를 작성할 것을 지시하니 기자가 바로 그 이튿날 사직했다는 웃지 못할 상황이 일어나는 현실이다.

필자는 이런 과정들이 선진 언론으로 가는 사실상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보고 있다. 이른바 MZ세대로 불리는 젊은 기자들이 거쳐가야 할 과도기적인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디지털 환경은 익숙하지만 아직 현장에 있는 '꼰대 선배'들과의 아날로그를 경험하는 경계선에 있다. 이를 유효적절히 활용하면 많은 어려움과 시행착오를 이겨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를 통해 온전한 디지털 언론인, 기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현장' 없이 '자료'를 우선하는 기자는 정체나 퇴보될 수밖에 없음을 잊지말기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