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의 세상

자아(自我)의 실체와 무아(無我)의 존재

최고야님 2023. 5. 8. 10:55

얼마 전 한강 다리를 지나던 한 운전자는 다리 난간 위로 올라가려는 한 여성을 보고 급히 차를 세웠다. 그를 잡고 설득해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려는 시도를 막은 모습이 뉴스를 통해 전해졌다.

한 편으로는 ‘자신에게 처한 상황이 얼마나 힘이 들었기에 저런 선택을 했을까’ 하는 공감도 들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나에게 주어진 생을 스스로 포기한다는 것은 결코 옳은 선택이 아니다.

무엇보다 나는 나를 믿어야 한다. 나에 대한 믿음이 없어지면 많은 것을 포기하게 된다.

그리스 철학자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말이다. 나 자신의 입장에서 ‘나는 나를 알고 있을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종교적 측면에서 보면 불교의 근본 교리 중 하나로 ‘만물에는 고정불변하는 실체로서의 나는 없다’, 즉 자아(自我)를 부정하는 무아(無我)를 말하고 있다. 이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처음으로 설파한 가르침이다.

이런 차원에서 불교의 무아설은 ‘나(我)’가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이론이 아니다. ‘실체가 없는 것을 실체로 보면 안 된다’는 실천적 의미를 담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나’라고 하는 실체의 존재 여부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문제는 무의미한 것이다.

실체가 있는 존재로서의 나에 대한 모습은 나의 행동에서 나온다. 진심일 때 힘이 생긴다.

한 유명 건설업체가 슬로건으로 ‘진심이 짓는다’라는 인문학적 광고로 주목을 받은 때가 있었다. 진심이라는 본질의 의미를 전하기 위해 시도한 방법으로 많은 호응을 받았다.

진심(眞心)은 사전적 의미로 ‘거짓 없는 참된 마음’이다. ‘온 마음을 다한다’는 진심(盡心)도 있다.

세상의 기본이 그래야 한다. 모두가 참된 마음으로, 바른 생활을 한다면 진심을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나는 진심(眞心)으로 진심(盡心)의 생활을 했어도 세상은 사실대로 인정하지 않고 이해타산을 우선한다. 그래서 아무리 무의미하다 해도 세상에서 나는 결국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아닌 무아로 기울 수밖에 없다. / 입력 2021-03-28 20:24